꽃과 쓰레기


꽃과 쓰레기

[틱낫한 지음 | 한창호•주영아 옮김 | 이솔 출판]



윤회를 열반으로 변환시키려면
윤회와 열반이 모두 우리 의식이 드러난 것임을
깊이 통찰하고 명확히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려움 없음]

번뇌가 바로 깨달음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두려움 없는 미소를 지은 채
망상의 바다 위에서 연민의 배를 타고
평화롭게 태어남과 죽음의 파도를 탈 수 있다.


보살은 우리들과 똑같이 태어남과 죽음,
영속성, 자아의 세계에 머문다. 하지만
보살은 무상과 무아를 깊이 통찰하는 수행 덕분에
존재와 비존재, 하나와 여럿, 오고 감, 태어남과 죽음 같은
관념과 연관된 두려움에서 벗어나 궁극적 차원과 접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 속에서 보살은 평화롭게 태어남과 죽음의 파도를 탄다.

수행을 해서 실체의 궁극적 차원과 접한다면
우리도 보살의 두려움 없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우리도 보살들과 마찬가지로 번뇌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다른 어딘가로 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번뇌와 깨달음이 하나임을 안다.
마음이 망상에 사로잡혀 있으면 번뇌만을 본다.
그러나 마음이 참되면 번뇌는 더 이상 우리 마음속에 없다.
오직 깨달음만이 있을 뿐이다.
상호 의존하는 존재의 본성을 접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태어남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체의 궁극적 차원과 접하는 법을 안다면,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실체를 안다면,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초월할 수 있다.
                            
두려움 없음은 불교에서 가장 위대한 수행이다.

정원사는 꽃을 쫓아다니지도 않으며
쓰레기로부터 도망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정원사는 꽃과 쓰레기를 둘 다 받아들이고 둘 다 잘 돌본다.
정원사는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도 않고
어느 한쪽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둘의 본성이 상호 의존해 존재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원사는 꽃과 쓰레기 둘 다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다.
보살은 능숙한 정원사가 꽃과 쓰레기를 다루는 것처럼
아무 분별없이 깨달음과 번뇌를 다룬다.
정원사는 변화시키는 법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부처의 마음가짐이다.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다.
붙잡을 것도 없고 놓을 것도 없다.
윤회가 곧 열반이다.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속적 차원은 궁극적 차원과 분리되지 않는다.
파도는 물이 되는 상태를 얻을 필요가 없다.
파도가 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속적 차원, 즉 존재와 비존재,
연속과 중단, 오고 감의 세계에 살지만
그와 동시에 열반과도 접하고 있다.

열반은 우리의 본성이다.
파도가 언제나 물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상 열반 속에 있었다.

무상과 무아에 관한 관념을 포함해
모든 관념이 소멸되는 것이 열반이다.

우리가 무상과 접하면 열반과도 접한다.

모든 것이 이미 존재한다.

태어남과 죽음도 없으며 오직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은 시작도 없는 때로부터 열반이 아닌 적이 없었다.

안과 밖이라는 관념을 초월하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대상이 이미 우리 내면에 있음을 알게 된다.
얻고자 하는 것을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 이미 얻을 수 있다.
얻을 것이 없음에 대한 명상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대상은 이미 얻어졌다.
우리는 어떤 것도 얻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이다.



개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개념을 단지 폭넓은 이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 차원에 도달하면 개념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상호 의존적 관점에서 사물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실재의 참다운 본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궁극적 실재로 가는 문을 열어 주는 열쇠는
상호 의존의 시각으로 깊이 통찰하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

의식에는 언제나
주체와 객체가 있다.
나와 남, 안과 밖은 모두
개념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주체와 객체는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동시에 함께 작용한다.
대상 없이는 의식이 존재할 수 없다.
의식은 언제나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주체 없이 객체가 없고 객체 없이 주체가 없다.
주체와 객체 둘 다 상호 의존해 존재하며 둘 다 전체에 토대를 이룬다.

우리 눈이 형상 및 색깔과 접촉할 때 한 순간의 안식이 발생한다.
보는 작용과 안식은 아뢰야식 속 씨앗들에서 생겨난다.

보기, 듣기, 생각하기, 인식하기, 이해하기,
상상하기가 모두 의식이며 의식은 늘 주체와 객체를 모두 포함한다.

'오직 드러남뿐'의 가르침에서 '의식'은
인지하고 인식하고 분별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의식에는 여러 다른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의식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의식의 여러 기능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많은 의식이 존재한다.



[온갖 종류의 씨앗]

우리 내면에는 무한히 다양한 씨앗이 존재한다.
윤회, 열반, 망상, 깨달음의 씨앗,
괴로움과 행복의 씨앗,
인식, 이름, 말의 씨앗 등이 존재한다.

열반은 안정과 자유를 뜻하며
괴로움의 순환이 중단되는 것을 뜻한다.
깨달음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아무리 부처님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다.
깨달음의 씨앗은 우리 의식 내부에 이미 있다.
그것이 우리의 불성이다.
불성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깨달은 마음이라는 내재적 특성으로,
우리는 단지 그것을 보살펴 줄 필요가 있을 뿐이다.

윤회를 열반으로 변화시키려면
윤회와 열반이 모두 우리 의식이 드러난 것임을
깊이 통찰하고 명확히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그리고 세계는
모두 우리 의식 안에 저장된 씨앗이 눈앞의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모든 현상은 우리 의식의 드러남이다.
                            
의식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함을 통해
우리에게 오는 온갖 경험과 인식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훈습된다.
우리의 경험과 지각은 아뢰야식에 씨앗으로 저장된다.



[개별적인 씨앗과 집단적인 씨앗]

우리의 모든 씨앗은
가족, 친구, 사회, 혹은 교육
그 어떤 것을 통해 전해졌더라도
본질적으로 개별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다.


아뢰야식은 개별적 의식과 집단적 의식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의 아뢰야식에 있는 각각의 씨앗은 개별적인 동시에 집단적이다.

우리는 개별적이라든가 집단적이라는 관념을 초월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그 안에 두 가지 요소를 다 갖고 있으며
집단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서로 의존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것은 언제나 집단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며
집단적인 것도 언제나 개별적인 것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아뢰야식에 들어 있는 모든 씨앗은
개별적 성격과 집단적 성격을 둘 다 지녔다.

우리 의식 속 씨앗에는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에 걸친
많은 이들의 경험과 생각과 인식이 들어 있다.
우리 의식에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친 집단적 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지음 | 이현주 옮김 | 불광출판사]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니르바나'다.

궁극의 차원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다.



매 순간 살아 있는 것이 불교 수행의 진수다.



진실로 거기에 있어라.
백 퍼센트 너 자신으로.

매일 매 순간 거기에 있어라.

이것이 불교 명상의 진수다.
우리 모두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안다.
그러니 날마다 순간마다 자기 삶을 깊고 충실하게 살도록 연습하자.

내가 마음챙김을 '백 퍼센트 거기에 현존하도록 
우리를 돕는 에너지'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챙김이야말로 너를 지금 여기에 참으로 존재하게 해주는 에너지다.



우리 주변에서 온갖 기적들로 생명이 피어난다.

물 한 그릇, 햇살 한 줄기, 나뭇잎 한 장, 애벌레, 꽃,
웃음, 빗방울 소리, 깨어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기적을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숱한 기적들의 총합이다.

가지각색 모양과 색깔을 보는 눈,
벌의 잉잉거리는 소리와 천둥소리를 듣는 귀,
온 우주와 티끌 하나를 어울러 궁리하는 뇌,
모든 생명체들의 맥박과 함께 같은 리듬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일상의 고된 일과로 피곤하고 낙심해 있을 때는
이런 기적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것들은 늘 거기 그렇게 있다.



'그러함'이라늘 말이 실재를 그나마 근사하게 묘사한다.
개념이나 생각은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설명하지 못한다.

궁극의 실재인 '니르바나'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개념과 생각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념의 소멸이 니르바나다.



붓다는 우리에게 개념과 관념을 걷어치우고
현실에 곧장 접근하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

비록 불교의 것들이라 해도,
만일 어떤 개념이나 관념에 사로잡혀 매달린다면
그 사람은 붓다의 방법을 써볼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어떤 교리나 이데올로기에도,
불교의 교리나 이데올로기라 해도 갇히지 마라.



일깨우는 사람

자기 안에 있는 고통과
다른 사람 안에 있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수행에 매진한다면, 우리 또한 깨달은 존재인 보살이 된다.

우리는 가족, 친구, 동료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보살로 거듭나도록 도와야 한다.
온 세상과 모든 중생의 행복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

만일 네가 수행을 해서 보살이 된다면,
네 주위 사람들은 아름다워짐과 진정한 영성과
참된 사랑이 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 때 스스로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게 될 것이다.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의 위대한 통찰이다.

싯다르타가 성취한 것을 우리 모두가,
남자든 여자든, 어떤 계층 어떤 집안 출신이든,
출가 수행자든 재가자든, 누구나 이룰 수 있다.

완전히 깨친 붓다가 될 소질과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완전히 깨달은 붓다가 되는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모두 보살이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

붓다는 행복하기 위한 여러 조건들이
지금 여기에 충분히 갖춰져 있음을 알아차리는
'삼투스타(samtusta)' 수행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더 무엇을 갖출 필요가 없다.
'삼투스타'는 아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뜻으로 번역된다.

현재 순간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행복의 모든 조건이 우리에게 갖춰져 있음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당장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가 혜택을 입다

우리 스스로 행복하고 평화로우면
우리는 한 송이 꽃처럼 웃으며 향기를 뿜을 수 있다.
그리고 온 가족, 온 사회가 그 혜택을 받을 것이다.



글로벌한 생각

'궁극의 차원'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한 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우리는 이미 그곳에 접해 있다.
다만 어떻게 더 자주, 더 깊이 접하느냐가 문제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글로벌한 생각'이라는 것이
궁극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준다.

세상을 글로벌한 눈으로 볼 때
우리는 훨씬 더 지혜로워지고
훨씬 더 편안해진다.

글로벌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많은 잘못을 피하게 되고
행복한 인생에 대한 더욱 깊은 견해를 지니게 된다.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여라


지금 이 순간 그대로 행복하여라

[틱낫한 지음 | 배인섭 옮김 | 더난출판사]



                            지혜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자리,
                            그곳은 바로 열린 마음,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삶이 고통스러운 건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관념을 놓아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순간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두 개의 보물에 대한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틱낫한 지음 | 신혜경 옮김 | 마음의 숲 출판]








첫 번째 보물 ◈ 삶에 대한 여덟 가지 깨달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흙과 공기 그리고 물과 불. 이 네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것은 공허하며, 동시에 고통의 씨앗을 품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아래의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물질적인 형태인 색色 / 모든 물질을 포용하는 수受
마음의 지각인 상想 / 마음의 작용인 행行 / 마음의 본체인 식識

이 다섯 가지는 혼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으며,
언제나 변화의 과정에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끊임없이 소멸합니다. 어떤 것도 우월하지 않으며
모두 그 실체가 없습니다. 마음은 모든 혼란의 근원이며,
몸은 불순한 행동의 숲과 같습니다.
만일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조용히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점차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인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욕망이 커질수록 고통 또한 커집니다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은
탐욕과 갈망에서 비롯됩니다.
소박한 소망과 포부를 가진 사람만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탐욕과 갈망이 불러온 혼란에서 그들의
몸과 마음이 벗어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기를 원하며,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인간의 소유에 대한 욕망은 불순한 행동들을
점점 늘어나게 합니다. 하지만 많은 수행을 거듭한
현자들은 소유에 대한 욕망이 적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해 자신과 타인을 깨우쳐 모두를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그들은 계속 정진해 나가기 위해
평화로움 속에서 단순한 삶을 영위합니다.
그리고 위의 깨달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습니다.





수행이나 삶의 가장 큰 방해물은
게으름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박하는 해로운 정신적인
요소들을 소멸시키고,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그리고 죽음이나 환상,
망각과 같은 마음의 혼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욕망과 격정, 형식 그리고 혼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생과 사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행을 하는 이들은 언제나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이해와 설득의 힘을 키울 수 있으며, 그 힘으로
살아 숨 쉬는 존재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극한 기쁨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증오와 화를 낳고,
이것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관대함을 수행할 때, 수행을 거듭한 이들은 친구든
적이든 모든 사람을 같은 마음으로 대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부유함, 아름다움, 야망, 식도락, 안락함을
추구하는 다섯 가지의 욕망이 결국
더한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더라도, 우리는 속세의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 예로,
수도승은 세 벌의 옷과 하나의 그릇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오직 수행을 위해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한다면 속세의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이를 연민의 마음으로 동동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과 사의 열기가 너무나도 맹렬할 때,
모든 곳에서 끝없는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 모든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들을 지극한 기쁨의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이 곳에 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에 대한 여덟 가지 깨달음에 대한 주제별 설명)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 첫 번째 깨달음 ○



첫 번째 깨달음은 불교 명상의
네 가지 기본 주제를 뚜렷하게 설명합니다.
무상, 고통, 무욕, 불순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에 관한 네 가지 원리를 기억하고
이에 관한 명상을 해야 합니다. 말씀에 나와 있듯이,
이러한 주제에 관한 명상을 거듭하면 점차 생과
사의 수레바퀴인 윤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상]

모든 것은
세상에 잠시 다녀가는 손님입니다.
그러니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한순간에서 또 다른 한순간으로
덧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인간의 삶도,
우리를 둘러싼 산도, 강도 하물며
세상을 다스린다는 정치구조까지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무상합니다.


[고통]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그러니 세상사에 휩쓸릴 때, 그 안에 깃든 무상함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공허하기에,
사물에 집착을 하면 할수록 그 공허함에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고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의 원인을 찾아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면, 우리가 숙명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통은 우리 안에서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무욕]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육체와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공허함의 본성인
무욕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무욕이란 명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무욕의 상태에서 명상을 해야만 자신과 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고 존재하는 현상은 없으며, 모두가 원인과
결과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사물뿐만 아니라 자기 몸과 마음에 깃든
무욕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명상한다면 당신도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욕망이 커질수록 고통 또한 커집니다


  ○ 두 번째 깨달음 ○



세상에는 다섯 가지 종류의
욕망이 존재합니다. 부유함, 아름다움, 야망, 식도락,
안락만을 추구하고자 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바라던 것을 완벽하게
이루어 모든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조차도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욕망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칠 대로 지치게 한 다음에야,
우리는 자신이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격정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그때야 우리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몸과 마음이 온전히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소박한 바람을 지닐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기를 원하며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 세 번째 깨달음 ○


작은 것에서 만족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욕망과 탐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수행하기에 충분한 만큼의 건강과 힘을
허락할 정도의 물질적 조건에 만족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집중력과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수행이나 삶의 가장 큰 방해물은
게으름입니다

  ○ 네 번째 깨달음 ○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에서
집중력과 이해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크나큰
인내심과 끊임없는 근면함이 필요합니다.

명상의 첫 번째 주제인 무상, 고통, 무욕, 불순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생과 사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다섯 번째 깨달음 ○


집중과 이해는 편협한 마음을 소멸시킵니다.

모든 욕망과 격정의 감정 중에서도 가장 뿌리가 깊은 것이
편협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그 뿌리가 느슨해지면,
탐욕과 분노 그리고 의심과 선입견과 같은 다른 욕망과
격정의 감정들까지 모두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를 아는 까닭에 우리는 편협한 마음을 잠재울 수 있도록
무상과 무욕의 진리에 대해 명상해야 합니다.
명상을 통해 편협한 마음에서 비롯된 무지의 뿌리가
잘려나가면, 우리는 생과 사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다른 이에게
이러한 사실을 가르쳐줄 수도 있게 됩니다.





부족함이 증오와 화를 낳고,
이것이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여섯 번째 깨달음 ○


관대함의 수행이란 부유함과 가난함 사이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 그것이 인간의 고통을 덜고
사회 정의를 이룩한다면 이 또한 관대함을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찌하면 적게 가지고도 크게 만족할 수 있을까요?
답은 단순한 삶에 있습니다.

불교에서 관대함의 수행이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함을 뜻합니다.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유함, 아름다움, 야망, 식도락, 안락함을
추구하는 다섯 가지의 욕망이 결국
더한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 일곱 번째 깨달음 ○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속세의 일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났으나
여전히 순수하고 맑은 연꽃과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생과 사의 열기가 너무나도 맹렬할 때,
모든 곳에서 끝없는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여덟 번째 깨달음 ○


불교의 정신은 어떤 차별도 없는 관대함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응원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이 있으면
우리는 속세에서 겪게되는 수많은 도전과 굴욕을
묵묵히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수행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리해 다른 이들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물할 수 있게 됩니다.